임진왜란 때 일본의 포로로 잡혀간 피로인 약 10 만명.
흑인노예의 40분의 1 값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강항(姜沆, 1567년~1618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 또는 사숙재(私淑齋)로 불리었다. 좌찬성 강희맹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강극검이고 성혼(成渾)의 문인이다.[1]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1600년 탈출한다. 대구향교 교수, 순천향교 교수 등을 지낸 뒤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 있는 내산서원(內山書院)에 강항을 모시고 있다. 내산서원 입구의 문은 강항의 부인 함평 이씨에게 내려진 열녀문이다. 4년에 걸치는 일본에서의 포로 생활을 수록한 《간양록》은 그가 일본에서 보고 들은 일본의 내정이나 국토의 특징, 당시의 여러 다이묘(大名)의 정세 등을 세세하게 적은 것으로 왕조에 대한 의견 제출서로서의 측면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위키백과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일세 / 피눈물로 한줄한줄 간양록을 적으니 / 임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조용필이 부른 ‘간양록’입니다. 애절한 가사에 가슴 밑창에서부터 쥐어짜듯 치솟아 오르는 격정을 담은 노래로 TV드라마의 주제곡이기도 합니다. 이 간양록의 주인공이 바로 조선 중기의 선비 수은(睡隱) 강항(姜沆)선생입니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서 태어난 선생은 세조 때의 문장가인 강희맹의 5대손으로 일곱살 때 맹자 한질을 하룻밤 사이 독파하였다는 신동이었습니다. 2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으로 있던 1597년 정유재란 때 향리에서 왜장 토도 타카토라(藤堂高虎)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두 형과 함께 일본으로 압송됩니다. 강항이 끌려간 곳은 토도가 성주로 있던 지금의 시코쿠 에히메현의 오즈(大洲)시였습니다. ‘간양록’은 강항이 이때 보고 들은 왜국의 실상과 왜인들의 무지한 모습을 소상히 적어 선조 임금에게 올리는 형식의 글입니다.
출처: http://news.korean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8529
'모셔온 영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년해로 (0) | 2015.07.28 |
---|---|
6.25 노래(펌) (0) | 2015.06.26 |
조용필의 간양록 (0) | 2015.06.16 |
꿈에 본 내고향 / 조아람 (0) | 2015.06.07 |
나그네 설움 / 조아람 (0) | 2015.06.07 |